[과학동아] 정인석교수, 마하 15 극초음속 시대를 열어라

2009-10-29l 조회수 2608

[첨부파일 본문내용]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정인석 교수의 항공우주추진연소연구실을 찾아가는 길은 나로호가 제 궤도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물론 끝내 추락한 나로호와 달리 기자는 연구실을 찾았지만 길을 잃어 헤매던 순간의 절박함은 결코 다르지 않으리라.
정 교수의 이 미스터리(?)한 연구실은 2007년에 새 건물로 이사왔다. 예전에는 기계항공공학부 소속의 건물에서 다른 연구실들과 함께 있었는데 새로 들여온 실험 장비들의 부피가 워낙 크다보니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지하주차장 옆 사무실. 이곳에 오려면 건물 밖에서 주차장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온 뒤 ‘격납고 사무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사무실을 찾아야 한다. 왜 이렇게 인적도 드문 지하주차장에 연구실을 차렸는지 정 교수에게 물었다.
“저희 연구실 기계 중에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극초음속을 만들어내는 장비가 있어요. 길이가 10m에 이르다보니 여유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죠. 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려면 주변에 복잡한 시설이 없고, 인적이 드물어야했어요. 지하주차장만한 곳이 없더군요(웃음).”
과연 연구실 내부에는 길고 거대한 장비가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고, 그 주위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이 가득했다. 정 교수와 그의 연구원들은 이 비밀스런 공간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극초음속의 비밀은 빈 깡통 구조 “우리 연구실에서는 주로 렘제트 엔진이나 스크램제트 엔진 같은 공기흡입식 엔진을 연구합니다. 초음속 흡입구의 특성에 관한 이론 연구는 물론이고, 모델 설계와 계산 그리고 이를 확인할 실험을 수행하죠.” 보통 항공 우주용 엔진은 크게 로켓 엔진과 공기흡입식 엔진으로 분류한다. 내부 산화체로 연료를 연소시켜 추진력을 얻는 형태가 로켓 엔진이다.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며 하늘로 솟았던 나로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공기흡입식 엔진은 대기 중의 공기를 흡입하고 이 안에 포함된 산소를 산화제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1976년 첫 취항해 마하 2의 속도로 런던과 뉴욕을 3시간 30분 만에 횡단하던 콩코드 여객기를 기억하는가. 세계에서 실용화된 유일한 초음속(음속인 340m/s보다 빠른 속도) 여객기였던 콩코드에 달았던 터보제트 엔진이 공기흡입식 엔진이다. 터보제트 엔진은 공기를 압축해 연료와 섞어 연소시킨 가스로 터빈을 돌린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비행기를 추진시킨다. 하지만 생산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정작 비행기를 날리는 데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효율 면에서 떨어졌다.
터보제트 엔진의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램제트 엔진과 스크램제트 엔진이다. 이 엔진들은 초음속 상태로 날아드는 공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굳이 압축기를 달 필요 없다. 당연히 압축기를 돌리기 위한 터빈도 존재하지 않는다. 엔진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는 압축기나 터빈에서 소모되지 않고 비행 속도를 올리는 데 집중된다.
“사실 램제트의 구조는 빈 깡통에 가까워요. 터널 같은 흡입구로 초음속의 공기들이 들어오면 이보다 폭이 좁은 연소실에서 연소가 일어나고 다시 배기구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구조니까요. 사실 이 개념은 1930년부터 나오기 시작했으니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예요.” 정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이론에서 구한 램제트와 스크램엔진의 추진력을 연구실에 설치된 극초음속충격파 풍동장비로 실험한다. 연구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던 길이 10m의 장비가 바로 극초음속충격파 풍동이다.
이 장비는 높은 압력의 공기를 낮은 압력으로 이동시킬 때 발생하는 충격파를 이용한다. 이 충격파에서 발생한 고속의 공기가 송풍기에서 불어오면 시험부에 실험할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성능을 측정한다.
연소 점화기술이 핵심
실제 램제트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자그마치 마하(1마하=340m/s) 2~6다. 한술 더 떠 스크램제트 엔진은 램제트 엔진의 한계 속도인 마하 6은 물론 이론적으론 마하 15도 가능하다. 실용화만 된다면 극초음속 엔진을 단 여객기를 타고 세계 어느 곳이든지 반나절 안에 도달할 날이 오게된다.
“램제트 엔진은 빠르긴 하지만 연료가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경제성이 떨어지면 자연히 대량 생산할 만큼의 수요가 생기기 힘들어요. 물론 수요가 늘어난다면 대량 생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현재까지는 미국의 대공유도탄과 프랑스의 대함유도탄 등에 이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비행 고도를 낮게 해 상대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저고도 아음속 유도탄이 효과적이었으나 인공위성 같은 추적 시스템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현재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을 선호해 램제트와 스크램제트 엔진이 제격이라고 한다.
“스크램제트 엔진과 램제트 엔진이 아직까지 실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램제트의 핵심은 초음속으로 유입되는 공기 속으로 적절히 연료를 분사해 연소시키는가 하는 거예요. 마하 10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연소실에 들어올 때는 마하 3.5쯤 됩니다. 하지만 이 속도의 공기 속을 뚫고 연료를 분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속도 ‘0’에서 연소를 시작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보통 비행기들은 활주로에서 멈춘 상태에서 서서히 가속해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들 엔진은 엔진 앞에서 날아드는 공기가 초음속 상태여야만 연소가 가능하다. 때문에 현재로선 다른 항공기에 업혀서 비행한 뒤 시작해야 한다. 점화됐을 때 3000도 정도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해야한다는 숙제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엔진은 세계 선진국들이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추진기관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술경쟁 구도에 따라 곧 가시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현재 정 교수의 연구실은 스크램제트 엔진의 축소모형을 설계하고 제작해 비행시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밝혀진 기본 개념과 기술들을 잘 정립하고 이해만 잘해도 국제적으로도 견줄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항공우주공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전하는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지금 하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해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항공우주공학은 거의 모든 과학의 집합입니다. 저는 화학이 정말 싫어서 필수 수업만 듣고 다신 듣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나중에 연소 공부를 하려니 화학 지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른 과에 개설된 화학수업을 다시 들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태도도 중요하죠. 그보다 먼저 지금 배우는 것에 집중하면 나중에 수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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