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아]서갑양 교수, 게코도마뱀 발바닥에서 딱정벌레 날개를 봤습니다

2012-03-14l 조회수 1954

(본문내용) 입춘 추위가 떠나고 모처럼 낮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2월 중순 관악산 중턱에 있는 서울대 공대를 찾았다. 최근 딱정벌레 날개의 결합원리를 이용해 ‘찍’ 소리 안 나는 찍찍이를 개발한 기계항공공학부 서갑양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건물 12층에 자리잡아 창 너머로 관악산 자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연구실에 들어섰다.
“제가 동네 아저씨처럼 털털해 보여도 사실 꽤 집요한 사람입니다. 허허!”
초면인 기자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왠지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자 서 교수도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대답한다. 올해 40세가 된 서 교수는 대중적인 연구주제로 수 년 전부터 꽤 알려진 과학자다.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을 모방한 접착 재료를 개발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딱정벌레로 모사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보통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는 한쪽 면에 갈고리 모양의 섬모가 달렸고 다른 면에 고리가 달려 서로 대면 맞물리면서 고정되는 탈부착 테이프다. 그런데 이번에 서 교수팀이 개발한 신개념 찍찍이는 양쪽 면 모두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섬모가 촘촘히 나 있다. 기존 벨크로와 달리 붙인 양 면을 아래위 방향으로 떼어내면 쉽게 떨어지지만 옆 방향으로 떼려고 하면 안 떨어진다. 미세한 섬모 표면 분자 사이에 순간순간 작용하는 약한 전기적인 인력(반데르발스힘) 때문이다.
딱정벌레는 평소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겉날개(앞날개)를 닫고 있다가 비행을 결심하면 겉날개를 열어 그 속에 접혀 있던 뒷날개를 펼쳐 날아간다. 겉날개와 몸통이 닿는 부분이 바로 찍 소리 안 나는 찍찍이 구조다. 겉날개를 닫고 있을 때는 단단히 고정돼 있지만 열려고 할 때는 쉽게 떨어질 수 있게 진화한 결과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딱정벌레 날개를 보고 이 구조를 생각한 건 아닙니다. 게코도마뱀 발바닥을 모사한 필름 두 장을 우연히 대봤더니 이런 특이한 접착 특성이 있더군요.” 그 뒤 자연계에 이런 예가 있나 찾아봤고 정말 딱정벌레 날개에 있었다고. 서 교수가 딱정벌레 박제에서 날개와 몸통 표면이 서로 맞물리는 부분을 가리킨다.
“제가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에 관심을 가진 건 서울대에 부임하고 1년 지난 2005년부터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다른 연구를 했죠.”
서 교수가 언론에 처음 선을 보인 건 10년 전인 2002년 그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다. 석사, 박사 6년 동안 무려 24편의 논문을 발표한 게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서너 편 쓰고 졸업하는 보통 대학원생의 7~8배나 되는 양이다. 이때 그의 전공은 반도체 공정과 관련된 나노패터닝, 즉 반도체 기판에 미세한 패턴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였다.
서 교수의 특이한 경력에 관심을 보이자 서 교수는 자기 삶의 과정이 ‘모범생’의 전형이라 특별히 할 얘기가 없다며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말을 꺼낼 때마다 서 교수 자신도 잊고 있었던 과거의 굴곡이 드러나면서 결국 기자의 존재조차 잊은 듯 스스로의 이야기에 말려들어갔다.


대입 실패와 어머니의 죽음, 폐결핵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 집요한 면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구슬치기와 딱지치기에 어찌나 열중했던지 동네 아이들 건 제가 다 땄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구슬을 던지는 자세를 잡으며 미소짓는 서 교수는 자신이 요즘 청소년이었으면 십중팔구 온라인게임에 빠졌을 거라고 말했다. 다행히 이렇다 할 유혹거리가 없던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며 전교 1, 2등을 도맡아해 온 그는 자신을 귀여워해준 화학선생님에 대한 ‘보답’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지원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해 수학문제가 너무 어렵게 나왔어요(당시는 선지원후시험 제도였다). 결국 떨어졌습니다.”
생애 첫 좌절을 맛본 서 교수는 종로학원에 들어가 일본 입시문제까지 풀 정도로 ‘집요하게’ 수학에 매달렸다. 그 결과 모의고사성적이 너무 잘 나왔다. 그래서 당시 합격선이 가장 높았던 서울대 전기공학부로 진로를 바꿨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판단이었지만 당시에는 점수가 아까웠다.
“그런데 시험 보름 전 부산 친척집에 가셨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1주일 만에 돌아가시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의 만류로 부산에 내려가지도 못한 그는 서울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하필 이 해에는 수학이 너무 쉽게 나와 한 두 문제 실수로 당락이 결정됐다.
“아버지와 합격자 명단을 몇 번이고 봤지만 제 이름이 없는 거예요. 하늘이 노랗더군요. 3수하면 된다고 위로하시는 아버지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2지망으로 지원한 화공과 합격자 명단을 봤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는 서 교수는 이때의 기쁨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돌고 돌아 원래 가고 싶어 했던 화공과에 들어간 그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집요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서서도 졸고 있는 거예요. 몸이 너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이라고 하더군요.” 자취하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무리한 결과다. 1년 동안 약을 먹어 결핵균은 사라졌지만 후유증으로 폐에 고름이 찼다. 나이 들어서 고생한다고 수술을 권해 고민 끝에 가슴을 25cm나 째는 큰 수술을 받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넘긴 그는 1996년 대학원에 진학하며 인생의 도약을 시작한다.


대학원 때 논문 24편 발표

“전 원래 족보(기출 시험문제)로 공부하는 걸 싫어합니다. 주위에서 요령없다는 얘기를 듣지만 무시하죠. 그러다보니 문제를 풀 때 독창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대학원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연구실에 나간 그는 당시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한 현상을 규명해보기로 했다. 즉 반도체 결정을 키울 때 실리콘과 게르마늄의 농도비에 따라 결정이 자라는 속도가 독특한 패턴을 보이는데 그 원인을 몰랐던 것. 이런 저런 수식을 적용하며 3개월간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마침내 패턴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지도교수인 이홍희 교수에게 결과를 보여주자 그럴듯하다며 당장 논문을 쓰라고 했다. 3월 논문을 완성해 저명한 학술지인 ‘응용물리학저널’에 투고했고 8월 논문이 받아들여졌다. 대학원 신입생이 이런 결과를 내자 화공과에서 화제가 됐다. 이 논문으로 그는 졸업할 때 화공과 최우수 석사논문상을 받았다.
이론 연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나노패터닝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미세한 요철이 있는 표면의 튀어나온 곳에만 고분자를 묻혀야 하는데 움푹 들어간 곳까지 고분자가 채워져 골치였다. 왜 그럴까 고민하던 그는 이게 모세관힘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고 결국 이를 역 이용해 고분자로 나노패턴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결과를 보여드렸더니 교수님이 ‘모세관힘리소그래피(CFL)’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논문은 2001년 ‘어드밴스드 머트리얼스’에 실렸는데 지금까지 260여 회나 인용됐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자 해야 할 실험이 줄을 이었고 그 결과 논문이 쏟아졌다. 이렇게 해서 논문이 24편이나 나왔다.
2002년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박사후과정 때는 생명공학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하고 조직공학의 대가인 미국 MIT의 로버트 랭거 교수팀의 문을 두드렸다. 나름 준비를 했지만 막상 첫 실험실 미팅에 참석한 뒤 자신감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 3개월 동안 닥치는 대로 논문을 읽은 다음에야 용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서 교수가 박사 때 한 일을 발표했는데 잠시 뒤 알리 카데호센이라는 학생이 그를 찾았다. 바이오센서를 연구하고 있는데 서 교수의 나노패터닝기술과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그는 박사과정 3년차였지만 연구에 진전이 없어 논문 한 편 못 낸 상황이었다.
“좋다. 나는 나노기술을 알려줄 테니 너는 바이오를 가르쳐다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실험을 할 때마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서 교수는 MIT에 1년 반 있는 동안 논문을 무려 14편이나 써냈다. “저도 큰 도움을 받았지만 알리도 제 덕을 톡톡히 봤죠. 지금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됐거든요.”


낯선 곳에서 길을 찾다

MIT 체류 기간이 짧았던 건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서 나노분야 교수를 뽑기로 했으니 지원해보라고 이홍희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 이렇게 해서 2004년 그는 32살의 나이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서 교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절반은 박사후과정 때 시작한 랩온어칩 분야이고 나머지 절반은 생체모방기술이다. 랩온어칩(lab on a chip)은 반도체기술을 이용해 손톱만 한 칩 안에 구현한 실험장치다. 서 교수팀은 지난 수년 동안 나노패턴 위에서 심장세포를 배양해 마치 심장처럼 동조해 뛰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2009년) 다공성 물질 위에 신장세포를 키워 세포가 실제 신장의 환경처럼 인식하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2010년).
“조직공학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던 건 세포가 마이크로 크기의 기계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 교수는 자신처럼 전혀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기존 생물학자들과 힘을 합칠 때 연구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세포가 들어 있는 랩온어칩이 몸속을 모사하는 것이라면 게코 발바닥이나 풍뎅이 날개를 흉내내는 건 외형을 모사하는 것이죠. 두 길은 결국 하나로 합쳐질 것입니다.” 현재 서 교수의 실험실은 대학원생 20여 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계뿐 아니라 화공, 화학, 물리, 생물, 전기 등 전공도 무척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실험실 미팅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시대를 잘 타고난 것 같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공부를 하다 문득 주위를 보니 학문 사이의 융합이 강조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지금까지 서 교수가 발표한 160여 편의 논문은 더 큰 도약을 위한 서막에 불과하지 않을까.

글 강석기 기자 | 사진 이서연 @과학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