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그물 짜서 태양 에너지 잡는다
모래는 손으로 쥘 수 없다. 손가락 사이 틈새가 자그마한(마이크로) 모래를 가두기엔 너무 크기(매크로) 때문이다. 모래를 담기 위해선 모래알보다 더 촘촘한 그물을 써야 한다. 하물며 모래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분자나 전자를 담으려면 얼마나 세밀한 그물을 써야 할까. 이를 미래에너지인 태양전지나 연료전지에 대입해보자. 모래알은 전자, 그물은 전극을 오가며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전자를 담는 전해물질이다. 마이크로미터 구조로 설계됐던 이 그물을 나노미터 구조로 바꿔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기계항공공학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만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의 전공은 바로 나노 입자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쌓는 것이다. 최 교수가 이끄는 ‘멀티스케일 에너지 시스템 글로벌 프론티어 연구단’은 나노 기술을 이용해 기존 태양전지와 연료전지 설계구조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전지 내 전자를 더 꽉 붙들 수 있는 전해 물질 구조를 10억 분의 1m인 나노 수준으로 설계해 에너지 효율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나노 수준에 미치지 못한 기존 설계로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분자나 전자 같은 입자들을 제대로 다 잡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나노 기술은 기계가공의 정밀도만 좌우하지 않습니다. 기계 속 여러 가지 구조를 나노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야만 혁신적인 장치를 발명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미래에너지라 부르는 태양전지, 연료전지 안에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분자와 전자는 크기가 매우 작다. 에너지가 발생하는 물리화학 반응 또한 나노 수준의 극히 좁은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기존 ‘거시적’ 설계방식 대신 나노 크기로 부품을 설계하면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다뤄야 할 입자의 크기를 고려한 맞춤 설계이기 때문이다. 거시적 설계 구조로는 입자의 생성과 이동, 수집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자 손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은 나노 기술을 이용해 에너지 생성 효율을 기존 대비 9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는 전기에너지 1W 생성 비용을 0.5달러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태양전지나 연료전지의 시스템과 부품을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크기로 설계하는 것이 혹시나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닐까. 최 교수는 알록달록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꽃잎 같기도 하고, 벽지 무늬 같기도 한 그림의 정체는 나노 크기의 입자를 쌓아올린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다.
“아직은 단층구조이지만 점차 좀 더 복잡한 복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연구단의 도전과제입니다. 나노 크기의 설계에서 시작해 마이크로 크기의 구조를 만들고,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설계까지 한 번에 통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멀티 스케일’이죠.”
이유 없는 실패란 없다
“실험은 실패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실패한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원리가 숨어 있어요.”
최 교수 연구단의 핵심기술은 단연 나노 입자들을 정교하게 배열하고 쌓을 수 있는 기술이다. 최 교수는 기술의 원리를 설명하던 중 기술을 개발하게 된 계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최 교수가 가스 이온과 동일한 양극으로 대전된 나노입자를 뿌려 감광막의 틈새를 채우는 실험을 진행하던 때였다. 동시에 분사하는 만큼 가스 이온과 나노입자가 고루 섞여 틈새를 메울 것이라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실험은 잘 되지 않았다. 가스 이온은 감광막 위에 달라붙고, 나노 입자는 감광막의 틈새 중 일정 부분에만 집중됐다. 감광막의 틈새를 가스 이온과 나노입자로 채우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실험이 왜 실패했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가스 이온의 무게가 가벼워 나노 입자보다 먼저 날아와 감광막 위에 달라붙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뒤늦게 날아온 나노입자들은 같은 극성으로 대전된 가스 이온들을 피해 감광막 사이 빈 틈을 찾아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성질을 이용해 감광막의 모양만 바꾸면 신기하게도 그 모양대로 나노입자들을 쌓을 수 있었다. 막다른 길인 줄만 알았던 실패 속에서 감광막을 주형으로 삼아 나노 구조를 자유자재로 쌓아올릴 수 있는 신기술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포기하지 않는 ‘끈기’입니다.”
최 교수는 ‘공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끈기를 꼽았다. 실험을 하다보면 자주 실패하는데 끈기가 없으면 가슴 떨리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뎌내는 힘도 바로 끈기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가 말하는 공학자의 길이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떠나는 개척자를 닮았다. 연구를 하다 보면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 원리를 통해 새로운 응용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오롯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길인 것이다.
“어떻게 물리를 싫어할 수가 있죠?”
공학자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과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 교수는 망설임 없이 물리를 꼽았다. 하지만 물리를 싫어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리의 매력을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허허 웃으며 황당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학생들이 물리를 싫어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최 교수는 학창시절부터 물리를 좋아했고, 공과대학에 진학한 후로는 ‘열전달’을 공부했다. 열전달 제어 기술은 냉장고를 비롯해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서 찾을 수 있는 필수적인 공학기술이다. 최 교수는 미국 UC버클리 공대에서 열전달 기술을 응용해 에어로졸 나노 물질을 만드는 연구를 하다가 나노 기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최 교수는 에어로졸 기술 관련 세계적인 학술지 ‘저널 오브 에어로졸 사이언스’의 편집장을 2004년부터 맡고 있다.
“물리는 상식입니다. 그리고 명확합니다.”
최 교수는 물리의 매력을 스포츠처럼 명확한 점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물리란, ‘만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상식’과도 같은 만큼 물리를 가까이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이우상 기자 | 사진 남승준 @과학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