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아]주종남 학부장, 전기자동차의 힘은 기계에서 나옵니다

2012-09-19l 조회수 1835

주종남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에 진열된 자동차, 트럭, 항공기 등의 모형이었다. 곧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는 나로호도 우뚝 솟아 있었다. 주 교수는 인사를 하자마자 “내 연구 자랑보다 기계공학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역시 학부장이지 싶었다.

디테일의 차이가 기계공학의 힘

“현대·기아자동차가 이제 품질도 세계 최고라고 하죠? 4기통 가솔린 엔진은 정말 최고 수준이 맞아요. 그런데 고속으로 달리다보면 독일의 최고 차들과 조금 차이가 납니다. 코너를 돈다든지, 차가 지면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다르죠. 그게 기계공학의 힘입니다.”

이런 디테일은 엔진 하나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과 설계, 작은 부품 등 하나하나 노하우가 필요하고 여기에 역학적인 지식이 덧붙어야 한다. 주 교수는 “한국이 전자공학에서 참 짧은 시간에 선진국을 넘어섰지만 기계공학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원체 밑바닥에서 하나하나 쌓아나가야 하는 학문과 산업이 기계공학”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전체 경제에서 기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높아요. 독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요. 기계가 없다면 제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반도체가 많이 남는 것 같지만 공작기계 등을 수입하면서 손해도 많아요.”
그래도 요즘엔 기계보다 전자, IT·바이오가 더 주목받는 게 사실이다. 기계공학은 점점 낡은 냄새가 나는 학문이 되는 게 아닐까. 주 교수는 단호하게 “기계공학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며 “모든 산업에서 경쟁력의 기본이 기계공학에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기자의 휴대전화(애플 아이폰)를 들어보이면서 “요즘 휴대전화의 경쟁력은 두 가지에 좌우된다”며 “하나는 소프트웨어, 다른 하나는 부품을 휴대전화기 틀 안에 절묘하게 끼어넣고 배치하는 능력”이라고 단언했다. 작은 부품을 만들고 휴대전화기 안에 넣는 능력이 바로 기계공학의 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의 부침 속에서도 기계공학은 늘 핵심 산업의 위치를 유지했다. 시대별로 섬유, 광업, 화공, 전자공학이 부각됐고 지금은 바이오가 뜨지만 그래도 기계공학은 최소한 두 번째의 인기는 유지했다. 주 교수는 “커트라인의 의미가 약해졌지만 대학 입시에서 기계공학처럼 오랫동안 상위권을 유지한 학문이 드물다”고 말했다.

주 교수에게 앞으로 기계공학에서 유망한 분야를 물었다. 대뜸 “전기, 전자와 결합한 기계공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주 교수는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인데 실제로 차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이 어디일까요”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엔진 아닐까 생각했는데 “냉난방, 즉 에어컨과 라디에이터”라고 한다.

“전기자동차의 맹점입니다. 그나마 부족한 에너지로 차가 움직이는데 충분하게 쓰지 못하죠. 기존 자동차는 엔진에서 나오는 열과 전기로 냉난방을 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전기자동차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그러려면 엔진을 어떻게 만들고, 설계나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기계공학에서 큰 숙제입니다. 이런 융합적인 문제들이 기계공학에 쌓여 있어요.”



물리, 수학이 지름길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뭘 하시는 건가요?”

주 교수는 다시 기자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아이폰의 알루미늄 껍데기는 큰 덩어리를 미세하게 잘라내고 가공해 만들죠. 이것이 정밀가공인데 우리 연구실이 하는 것도 비슷한 일을 합니다.”

5~6년 전 주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전해미세가공’이라는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금속을 소금물(NaCl)에 넣고 전기를 걸어 표면을 깎아내거나 가공하는 것이다. 무척 섬세하게 금속 표면을 할 수 있어 세계 학계가 꽤 주목하고 있다. 주 교수는 “첫 논문의 인용 횟수가 벌써 100회를 넘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외출을 나가시기에 “집에 얌전히 있을테니 시계를 뜯어보고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단다. 뚜껑이나 열겠지 하는 생각에 어머니가 허락해줬는데 주 교수는 부품 하나하나까지 완전히 뜯어내버렸다. 물론 조립하지는 못해 혼이 났다. 자연스레 기계공학의 길을 생각하게 됐고 지금까지 쭉 한 길을 걸어왔다. 혹시 학창 시절에 후회스러운 게 없느냐고 물었다.

“물리, 수학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그냥 공부는 했는데 기계공학에 물리, 수학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 물리가 이래서 중요하구나, 수학이 이래서 중요하구나’하고 깨닫게 됐죠. 물리, 수학이 탄탄해야 창의적인 생각도, 기본기가 탄탄한 연구도 할 수 있어요. 지금도 대학 입시에서 면접을 보면 수학, 물리 실력이 탄탄한지 유심히 봅니다.”



주 교수는 ‘창의적공학설계’라는 강의를 93년부터 서울대에 개설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신입생들이 듣는 과목인데 이런저런 재료를 갖고 다양한 기계제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팀을 짜서 아이디어도 나누고, 함께 고생해서 만들다보면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커진다. 학생들에게 인기도 높아 주 교수는 공대에서 ‘명강사’로도 자주 선정됐다. “기계공학자라면 직접 만들고 부수고 조립해봐야 자기 실력이 쌓입니다. 그래야 진짜 전기자동차도, 로봇도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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