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안성훈 교수, 네팔 오지에 빛과 온돌 선물한 서울대 교수

2012-12-11l 조회수 1438




(본문내용)
금융위기로 구호단체들 떠나 작년부터 '네팔 돕기' 운동 나서
발전 시설로 지역경제도 살아 "스스로 일어날 길 열어줘요"


서울대 안성훈 교수(기계항공공학부)는 지난 여름방학 기간 내내 학생들과 온돌 만들기에 비지땀을 흘렸다. 내년 1월 히말라야 산자락 고산지대인 네팔에 보급할 온돌이었다.

안 교수는 작년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네팔 고산지대에 태양광 발전(發電) 시설을 세우고 있다. 그러던 중 난방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네팔인들은 집안에서 불을 땐다. 난방과 조리용이다. 그러나 굴뚝이 없어 메케한 연기로 온 가족이 고생한다. 할 수 없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창문에 바람이 통하는 발을 건다. "처음부터 현지 재료로 만들자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우리 전통 온돌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엔 넓적한 돌과 진흙, 짚이 널려 있거든요."

안 교수와 네팔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그의 전공은 원래 스마트 재료와 3차원 프린팅 등 첨단분야다. 2009년 네팔 출신 대학원생과의 면담이 그에게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구호단체들이 네팔에서 철수하고 있다며 저보고 '도와달라'더군요. '교수가 무슨 돈이 있나'란 생각에 바로 잊었죠."

하지만 이듬해 겨울, 학과 기독교인 모임에서 3학년 여학생이 던진 한마디 말이 그의 기억을 되살렸다. "우리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라는 말에 한 해 전 네팔 학생의 말이 떠오른 것. 실험실 크리스마스 파티 등에서 "네팔을 돕자"고 제안하자, 학부와 대학원생 13명이 선뜻 동참하고 나서 네팔 돕기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안 교수는 먼저 태양광발전을 이용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해 주기로 했다. 연구재단의 ODA(공적개발원조) 프로젝트로 선정됐지만 돈이 턱없이 모자라자 학교와 삼성전자·포스코파워의 지원을 받았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자기 주머니를 털었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고산지대를, 그것도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 짐을 지고 갈 것에 대비해 우중(雨中) 산악등반 훈련도 했다.



 


작년 8월, 네팔 남동부의 해발 2500m 국경지대 마을에 태양전지판과 전등을 설치해준 안성훈 교수가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앉아 쉬고 있다. /안성훈 교수 제공

작년 8월 13일 안 교수와 학생들은 거머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절벽길을 한없이 걸었다. 12시간이나 걸어 도착한 곳은 해발 2500m 네팔 동부 국경지대의 라마호텔. 다음 날부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태양전지판 설치 공사에 착수한 지 꼬박 이틀 만인 15일 밤 8시, 이곳에 처음으로 전등이 켜졌다.

두 달 뒤엔 옆 마을에도 태양전지판과 전등을 설치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유지비를 냈고, 모자란 돈은 관광객들로부터 카메라·노트북 충전비용을 받아 충당했다. 도움받기에만 익숙하던 주민들이 유지·보수 능력을 스스로 갖춘 것이다. 올 2월에는 한양대·경상대 학생들도 동참해 인근 지역 2㎢(60만평)에 흩어진 집들에 전기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참가비를 받는데도 매번 네팔에 갈 때마다 참여 학생이 두 배씩 늘었다. 내년 1월엔 풍력과 수력발전 시설도 세울 예정이다.

안 교수는 네팔에 설치할 온돌로 라디에이터처럼 집안 한구석에 직육면체로 세우는 고구려·발해식 쪽구들을 선택했다. 이러면 집을 새로 짓는 불편함이 없다. 전등에 쓰고 남는 전기로 버섯을 키우고, 온돌 위에 널어 빨리 건조하면 비싸게 내다 팔 수 있다. 이 돈으로 발전시스템을 유지하고 자녀 교육 등에 투자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물을 구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죠."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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